나이 앞에 무너진 '핵주먹', 소문잔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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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계 전설 마이크 타이슨 , 유튜버 겸 프로복서 폴에게 만장일치 판정패헤비급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아이언맨' 마이크 타이슨(58)이 지난 16일(한국시간), 19년 만에 치른 복싱 시합에서 고배를 마셨다. 상대는 31세 어린 유튜버 겸 프로 복서 제이크 폴(27)이었는데 결과는 타이슨의 만장일치 판정패였다. 왕년의 핵주먹은 나이 앞에 무기력했고 그 상황에서도 폴은 지루한 아웃복싱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결국 체력, 활동량에서 앞선 젊은 폴이 승리를 가져갔다.
둘의 대결은 시합이 발표되기 무섭게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복서라도 1966년생이면 복싱은 커녕 건강부터 챙길 나이다. 한국 나이로 환갑이 코앞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고강해지는 스토리는 무협 소설 속에서나 존재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이가 들면 육체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만큼 20대의 현직 프로 복서와 58세 전직 복싱 스타가 링에서 정식으로 맞붙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경기에 나설 노장이 다름 아닌 타이슨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혹시 타이슨이라면 업셋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라는 희망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이 앞에 봉인된 왕년의 핵주먹
결과적으로 이변은 없었다. 아무리 타이슨이라고 해도 50대 후반에 한창때 젊은 복서를 감당하기는 벅찼다. 초반 1, 2라운드는 그래도 클래스를 보여줬다. 전성기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현란한 상체 움직임으로 폴을 몰아붙였다. 타이슨이 쫓아가면 폴이 클린치로 모면하는 형태가 몇 차례 반복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움직임, 펀치 파워는 둘째치고 체력이 안 받쳐줬다. 3라운드부터 타이슨의 몸은 굳어버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움직이는 샌드백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폴이 화끈하게 치고받자고 들어갔다면 이변도 기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재미없다는 혹평이 쏟아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실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경기 종료 10여 초를 남기고 폴이 존경의 의미로 타이슨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자 난타전을 기대했던 관중들이 야유를 쏟아내기까지 했다. 16분간 기대 이하의 경기를 펼치고 타이슨이 받아 간 돈은 2000만 달러(약 279억 원). 폴은 4000만 달러(약 558억 원)였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런 말도 안되는 경기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타이슨의 과거 커리어, 이미지 덕분이다. 그리고 폴이 운영하는 스포츠 이벤트 회사와 넷플릭스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폴은 구독자 2090만명을 가진 유튜버이자, 이날 전까지 프로 무대에서 10승 1패를 거둔 복서이기도 하다.당초 지난 7월 대결 예정이었는데, 타이슨이 5월 비행기 안에서 궤양 발작으로 쓰러져 경기가 연기된 바 있다. 경기는 타이슨의 나이를 감안해 12라운드가 아닌 8라운드로 펼쳐졌으며, 라운드당 경기 시간도 3분에서 2분으로 줄였다. 타이슨이라는 이름 아래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7만 5000여 명이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AT&T 스타디움을 메웠고 전세계 6000만 가구가 넷플릭스 생중계를 시청했다. 넷플릭스 측에 따르면, 순간 최대 접속자는 65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 자체부터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타이슨은 경기 전 체중 측정 때 폴이 자신의 발가락을 밟자 바로 따귀를 날리며 격하게 반응했는데 이 장면이 가장 화끈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타이슨은 스스로 만족했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높은 이름값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이슨의 전성기는 엄청났다. 헤비급 복서 치고는 작은 축(179cm·109kg)에 속했지만 특유의 유연성과 엄청난 순간 폭발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경쟁자들을 줄줄이 KO로 무너뜨린 당대 최고의 강타자였다. 현재까지도 헤비급 역사에서 가장 강했던 하드펀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 통산 전적 58전 50승 44KO 6패 2무효(폴과의 경기 이전 기준)의 성적을 남긴 그는 18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무대에 데뷔했는데 이후 무려 37연승, 19연속 KO라는 돌풍의 중심에 서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86년 11월 23일 WBC(세계복싱평의회)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트레비 버빅을 KO로 누르고 최연소 헤비급 세계챔피언(20살 4개월 22일)의 신화를 창조했다.
다음 해인 1987년 3월 WBA(세계복싱협회) 타이틀, 8월에는 IBF(국제권투연맹) 왕좌까지 거머쥐며 가장 권위 있는 3개 복싱 단체의 타이틀 획득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경기를 초반 KO로 장식하는 놀라운 경기력으로 전 세계 복싱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무하마드 알리(복싱), 알렉산더 카렐린(레슬링), 에밀리아넨코 표도르(MMA) 등 각 시대별로 강함의 아이콘이 있는데 당시에는 타이슨이 그런 존재였다.
안타까운 것은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성실성만 뒷받침되었더라면 헤비급 역사의 상당수 기록을 줄줄이 깼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타이슨은 사고뭉치였다. 본래도 악동 기질이 다분했던 데다 어린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리다 보니 주변의 유혹이 많았고 그 결과 온갖 사건 사고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이슨이라는 이름은 많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경기력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다. 타이슨은 마치 한 마리 맹수와 같은 돌파력을 자랑했다. 아무리 펀치가 강하다 해도 작은 신장의 타이슨이 상대를 때리기 위해서는 일단 파고드는 게 먼저였다.
빠르고 유연한 데다 순간적 타이밍 싸움에서도 능했던 타이슨은 이러한 플레이를 굉장히 잘했다. 가드를 굳히고 허리와 어깨를 낮춘 자세에서 상체 움직임으로 상대의 펀치를 흘리거나 막고 거리를 좁히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일단 타이슨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게 되면 대부분 상대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 워낙 펀치가 강한지라 같이 받아치기보다 가드를 굳히고 벗어나기 바빴다.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시원시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워낙 스탭이 빠르고 머리 움직임이 좋았던지라 어지간해서는 잔 펀치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때리기는 까다롭고 한 대 잘못 맞으면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많은 상대들은 지레 겁을 먹고 몸 움직임을 평소처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헤비급 펀치를 가지고 라이트급 선수처럼 움직인다'는 평가가 타이슨에게 붙었던 이유다. 그야말로 전성기 때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의 인파이터형 복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선수였다.
한편, 타이슨은 이번 경기에 대해 만족한 모습이다. 그는 경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는 졌지만 이겼을 때의 기분이 든다. 후회는 없다. 나는 6월에 거의 죽을뻔했다. 대수술을 받았다. 건강해지기 위해 싸워야 했고 그래서 이겼다. 그리고 돌아와서 내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젊고 재능있는 파이터와 경기를 치렀다. 엄청난 경험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둘의 대결은 시합이 발표되기 무섭게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복서라도 1966년생이면 복싱은 커녕 건강부터 챙길 나이다. 한국 나이로 환갑이 코앞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고강해지는 스토리는 무협 소설 속에서나 존재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이가 들면 육체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만큼 20대의 현직 프로 복서와 58세 전직 복싱 스타가 링에서 정식으로 맞붙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경기에 나설 노장이 다름 아닌 타이슨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혹시 타이슨이라면 업셋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라는 희망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이 앞에 봉인된 왕년의 핵주먹
▲ 지난 16일(한국시간) 치른 복싱시합에서 타이슨이 31세 어린 유튜버 겸 프로 복서 제이크 폴(27)을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패했다. |
ⓒ UPI/연합뉴스 |
결과적으로 이변은 없었다. 아무리 타이슨이라고 해도 50대 후반에 한창때 젊은 복서를 감당하기는 벅찼다. 초반 1, 2라운드는 그래도 클래스를 보여줬다. 전성기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현란한 상체 움직임으로 폴을 몰아붙였다. 타이슨이 쫓아가면 폴이 클린치로 모면하는 형태가 몇 차례 반복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움직임, 펀치 파워는 둘째치고 체력이 안 받쳐줬다. 3라운드부터 타이슨의 몸은 굳어버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움직이는 샌드백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폴이 화끈하게 치고받자고 들어갔다면 이변도 기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재미없다는 혹평이 쏟아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실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경기 종료 10여 초를 남기고 폴이 존경의 의미로 타이슨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자 난타전을 기대했던 관중들이 야유를 쏟아내기까지 했다. 16분간 기대 이하의 경기를 펼치고 타이슨이 받아 간 돈은 2000만 달러(약 279억 원). 폴은 4000만 달러(약 558억 원)였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런 말도 안되는 경기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타이슨의 과거 커리어, 이미지 덕분이다. 그리고 폴이 운영하는 스포츠 이벤트 회사와 넷플릭스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폴은 구독자 2090만명을 가진 유튜버이자, 이날 전까지 프로 무대에서 10승 1패를 거둔 복서이기도 하다.당초 지난 7월 대결 예정이었는데, 타이슨이 5월 비행기 안에서 궤양 발작으로 쓰러져 경기가 연기된 바 있다. 경기는 타이슨의 나이를 감안해 12라운드가 아닌 8라운드로 펼쳐졌으며, 라운드당 경기 시간도 3분에서 2분으로 줄였다. 타이슨이라는 이름 아래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7만 5000여 명이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AT&T 스타디움을 메웠고 전세계 6000만 가구가 넷플릭스 생중계를 시청했다. 넷플릭스 측에 따르면, 순간 최대 접속자는 65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 자체부터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타이슨은 경기 전 체중 측정 때 폴이 자신의 발가락을 밟자 바로 따귀를 날리며 격하게 반응했는데 이 장면이 가장 화끈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타이슨은 스스로 만족했다
▲ 지난 16일(한국시간) 치른 복싱시합에서 타이슨이 31세 어린 유튜버 겸 프로 복서 제이크 폴(27)을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패했다. |
ⓒ UPI/연합뉴스 |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높은 이름값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이슨의 전성기는 엄청났다. 헤비급 복서 치고는 작은 축(179cm·109kg)에 속했지만 특유의 유연성과 엄청난 순간 폭발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경쟁자들을 줄줄이 KO로 무너뜨린 당대 최고의 강타자였다. 현재까지도 헤비급 역사에서 가장 강했던 하드펀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 통산 전적 58전 50승 44KO 6패 2무효(폴과의 경기 이전 기준)의 성적을 남긴 그는 18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무대에 데뷔했는데 이후 무려 37연승, 19연속 KO라는 돌풍의 중심에 서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86년 11월 23일 WBC(세계복싱평의회)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트레비 버빅을 KO로 누르고 최연소 헤비급 세계챔피언(20살 4개월 22일)의 신화를 창조했다.
다음 해인 1987년 3월 WBA(세계복싱협회) 타이틀, 8월에는 IBF(국제권투연맹) 왕좌까지 거머쥐며 가장 권위 있는 3개 복싱 단체의 타이틀 획득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경기를 초반 KO로 장식하는 놀라운 경기력으로 전 세계 복싱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무하마드 알리(복싱), 알렉산더 카렐린(레슬링), 에밀리아넨코 표도르(MMA) 등 각 시대별로 강함의 아이콘이 있는데 당시에는 타이슨이 그런 존재였다.
안타까운 것은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성실성만 뒷받침되었더라면 헤비급 역사의 상당수 기록을 줄줄이 깼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타이슨은 사고뭉치였다. 본래도 악동 기질이 다분했던 데다 어린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리다 보니 주변의 유혹이 많았고 그 결과 온갖 사건 사고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이슨이라는 이름은 많은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경기력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다. 타이슨은 마치 한 마리 맹수와 같은 돌파력을 자랑했다. 아무리 펀치가 강하다 해도 작은 신장의 타이슨이 상대를 때리기 위해서는 일단 파고드는 게 먼저였다.
빠르고 유연한 데다 순간적 타이밍 싸움에서도 능했던 타이슨은 이러한 플레이를 굉장히 잘했다. 가드를 굳히고 허리와 어깨를 낮춘 자세에서 상체 움직임으로 상대의 펀치를 흘리거나 막고 거리를 좁히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일단 타이슨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게 되면 대부분 상대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 워낙 펀치가 강한지라 같이 받아치기보다 가드를 굳히고 벗어나기 바빴다.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시원시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워낙 스탭이 빠르고 머리 움직임이 좋았던지라 어지간해서는 잔 펀치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때리기는 까다롭고 한 대 잘못 맞으면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많은 상대들은 지레 겁을 먹고 몸 움직임을 평소처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헤비급 펀치를 가지고 라이트급 선수처럼 움직인다'는 평가가 타이슨에게 붙었던 이유다. 그야말로 전성기 때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의 인파이터형 복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선수였다.
한편, 타이슨은 이번 경기에 대해 만족한 모습이다. 그는 경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는 졌지만 이겼을 때의 기분이 든다. 후회는 없다. 나는 6월에 거의 죽을뻔했다. 대수술을 받았다. 건강해지기 위해 싸워야 했고 그래서 이겼다. 그리고 돌아와서 내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젊고 재능있는 파이터와 경기를 치렀다. 엄청난 경험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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