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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이미 내년 시즌에 가 있다… “KS 우승 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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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KIA ‘V12’ 뒷받침한 심재학 단장심재학 KIA 타이거즈 단장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홈팀이 2점 차로 앞선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 마무리 투수의 시속 150㎞ 높은 공에 속은 상대 타자가 힘껏 헛스윙을 돌렸다. 경기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자 광주 한복판이 함성으로 뒤덮였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V12’가 완성되던 순간이었다.

올해 KIA는 말 그대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2위와 9경기 차이 나는 1위(승률 0.613·87승55패2무)로 정규리그를 마친 데 이어 한국시리즈 역시 4승1패로 매듭지었다. 정규리그에서 남긴 팀 타율 1위(0.301), 평균자책점 1위(4.40)라는 투타 전반에서의 압도적인 기록은 덤이다.

빛나는 성적표 뒤엔 2년 차 ‘초보 단장’ 심재학(52)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부임 후 지난 1년 반 동안 그가 지나온 길은 곳곳이 암초투성이였다. 전임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인해 리더십이 흔들렸고, 시즌 중반엔 핵심 선수들이 줄부상에 시달렸다.

팀이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심 단장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선수, 코치 시절에도 없던 불면증과 각종 징크스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색할 새 없이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그는 손수 체계화한 선수들의 데이터를 제공하며 ‘초보 감독’ 이범호의 뒤를 받쳤고, 선발 자원에 구멍이 생겼을 땐 스카우트 팀과 발 빠르게 대안을 찾았다.

우승을 이룬 지금은 더욱 쉴 틈이 없다. 스토브리그에 본격적으로 돌입해 할 일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우승 여운은 반나절 만에 털어냈다”며 “그 이후부터는 2025년에 시계를 맞춰 놓고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는 심 단장을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짜’답지 않은 위기관리 능력

심재학 KIA 타이거즈 단장(가운데)이 지난달 2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와 5차전에서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이범호 감독과 차기 시즌 구상을 하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올 시즌은 한 경기도 편하게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요.”

김도영의 30-30, 양현종의 최다 탈삼진 등 선수들의 기록은 물론이고 다득점에 역전승까지 명경기가 많았던 시즌이었지만 심 단장은 “리드가 10점 차로 벌어져 있어도 항상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성장과 승리의 짜릿함보다도 그의 눈엔 팀의 ‘위기’가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심 단장이 꼽은 올 시즌 KIA의 가장 큰 위기는 선발투수들의 줄부상이었다. 시즌 초에 세운 5선발 중 양현종을 빼고는 전부 부상을 당했다. 외국인 선수 크로우가 불펜 투구 중 팔꿈치를 다쳤고, 이의리와 윤영철이 연달아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에이스 제임스 네일마저 8월 말 불운의 턱관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토종 선수들의 빈 자리는 그간 KIA의 팜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온 영건들이 메웠다. 이전까지 출전 기회를 잘 잡지 못했던 황동하와 김도현이 각자 직전 시즌 대비 3배 이상의 이닝을 책임진 가운데, 중간 계투에선 곽도규가 마무리에선 정해영이 제 몫 이상을 해냈다.
외인 투수의 부상은 대체선수 투입으로 극복했다. 이때 심 단장과 스카우트 팀의 호흡이 빛을 발했다. 크로우가 부상 진단을 받은 뒤 대체 선수 알드레드의 명단 등재를 신청하기까지 3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네일의 부상 당시엔 스타우트를 3일 만에 데려왔다.

심 단장은 “그동안 KIA에 외국인 전담 스카우터가 없었는데 경력자들을 새로 뽑아 팀 역량을 전문화했다”며 “처음엔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아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스카우터들의 눈이 정확했다”고 돌아봤다.

스카우트 팀의 처우 개선도 심 단장이 밀어붙인 작업 중 하나다. 그는 “스카우터가 극한 직업이면서도 그만큼 유혹도 많다”며 “10개 구단 스카우트 팀의 봉급 수준을 파악해 처우를 개선하면서 ‘대신 절대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힘써 데려온 선수에겐 온 마음을 다했다. 지난 8월 네일이 턱관절 부상을 당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심 단장은 “당시 네일에게 구단과 선수들이 원하는 건 한국시리즈 출전이 아니라 너의 쾌유라는 점을 알려주는 데 집중했다”며 “수술을 집도할 의료진의 프로필도 번역해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꾸준히 병상을 찾아 네일의 회복세를 살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심 단장은 선수단 한 명씩 네일에게 전하는 응원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직접 구워 보여주기도 했다. 진심 어린 보살핌이 통한 걸까. 약 한 달 만에 팀에 복귀한 네일은 한국시리즈 1차전과 5차전에 등판하며 KIA의 통합 우승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단장이 떠나도 ‘체계’는 남는다

심 단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달 29일 광주 한 호텔에서 열린 축승회 현장에서 이범호 KIA 감독(왼쪽부터), 최준영 KIA 대표이사, 주장 나성범 선수와 함께 우승 기념 떡을 자르는 모습. 연합뉴스
스카우트 팀 역량 강화와 함께 심 단장이 가장 공들인 작업은 팜 시스템 체계화였다. 심 단장은 “단장이 바뀌고 감독이 바뀌더라도 안정화된 타이거즈만의 팜 시스템은 갖춰 놓고 싶었다”며 “육성군을 매번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하루, 주, 월 단위로 리포트가 올라오게끔 체계를 다듬었다”고 말했다. 이때 심 단장이 그린 체계에는 디테일이 생명이었다.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가공을 못해서 현장의 지도자와 선수들한테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기존엔 타자는 타수와 안타 개수, 투수는 투구수와 구속 정도의 자료만 올라왔다면, 지금은 거기에 코치진의 평가를 하나하나 쓰게 하고 있어요. 카메라 장비도 보강해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다각도로 찍고, 이 영상을 언제든 살펴볼 수 있게 링크로 공유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품을 들여 작성한 데일리 리포트를 검토하는 일은 심 단장이 아무리 바빠도 꼭 지키는 루틴 중 하나다. 경기 후 영상 복기와 팀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을 담은 일지 작성도 빼놓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팀의 약점도 눈에 훤히 보인다.

심 단장은 “올해 KIA가 점수를 낼 때 확 내고 선발이 마운드에 있을 때보다는 후반에 득점력이 높아지는 양상이 있었다”며 “경기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건 감독의 영역이지만 그 이유에 대한 데이터팀의 분석을 제공해왔다”고 전했다.

왕조가 아닌 ‘재도전’

탄탄한 전력과 투타 밸런스에 벌써 KIA의 왕조 건설을 내다보는 이들이 많지만 심 단장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다. 그는 “‘왕조’라는 표현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라며 “전력평준화로 최근엔 KBO와 MLB를 통틀어 2년 연속 한 팀이 정상을 차지한 건 거의 없는 사례”라고 짚었다. 대신 ‘재도전’이라는 표현을 쓰려 한다. 심 단장은 “다음 시즌 목표가 우승인 건 변함없다”며 “다시 한번 도전하는 정신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관건은 투수 보강이다. 심 단장은 “최근 KBO 우승팀들이 연속 우승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봤는데 결국 투수진에서의 어려움이더라”며 “샐러리 캡의 어려움이 있지만 네일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보내줘야 할 경우에 대비한 리스트를 작성해 스카우트 팀과 영상 회의에도 돌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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