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경기 만에 드러난 OK저축은행 ‘오기노 매직’의 민낯… 레오를 포기한 대가는 앞으로 더 혹독할 지도 모른다
본문
오기노 감독의 기조는 이전 감독들과는 달랐다. 서브 범실을 줄이고, 내실을 기하는 탄탄한 배구를 추구했다. 아울러 팀원 전체가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하는 전형적인 일본 배구의 강점을 OK저축은행에 이식하려 했다.
팀 공격의 절반 정도를 책임지다 보니 레오는 범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었다. 오기노 감독은 그런 레오를 길들이려 공격 점유율을 줄이기도 했고, 서브 범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서브를 때리는 것을 막아세우기도 했다.
레오를 앞세워 현대캐피탈과의 준플레이오프 단판 승부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 승리를 거둔 OK저축은행은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도 2전 전승으로 통과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다. 시몬과 경기대 3인방(이민규-송명근-송희채) 시대에 챔피언결정전 2연패(2014~2015, 2015~2016)를 달성한 이후 8시즌 만의 챔프전 진출이었다.
오기노 감독은 2024~2025시즌을 준비하면서 큰 결정을 내렸다. 팀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레오를 보유한 상태로 나머지 포지션을 보강하며 대한항공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게 아닌, 팀 시스템을 아예 처음부터 손을 보기로 한 것이다. 2023~2024시즌 챔프전 준우승으로 인해 전체 140개의 구슬 중 단 10개만을 넣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을 확률이 7.14%에 불과함에도 오기노 감독은 레오를 내치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뽑기로 한 것이다.
결국 두 번째로 낮은 확률을 가졌던 OK저축은행은 트라이아웃에서 꼴찌인 7순위 지명권을 행사하게 됐고, 이탈리아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마누엘 루코니(등록명 루코니)를 지명했다.
OK저축은행은 지난 24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2024~2024시즌 홈 개막전을 가졌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오기노 감독이 트라이아웃 시장에 내놓은 레오를 2순위로 지명한 현대캐피탈. 지난 세 시즌간 안산의 ‘King’으로 군림하며 안산 팬들에게 수많은 승리를 선물했던 레오가 이제는 다른 유니폼을 입고 안산의 홈 코트를 폭격하러 온 것이다.
결과는? 현대캐피탈의 세트 스코어 3-0(25-21 25-19 25-19) 셧아웃이었다. OK저축은행의 배구는 무색무취였다. 공격이 강력하지도, 블로킹벽이 견고하지도, 서브로 상대를 흔드는 것도 아니었다. 이날 팀 공격 성공률은 38.27%에 불과했고, 리시브 효율도 28.81%에 그쳤다. 반면 현대캐피탈의 팀 공격 성공률은 50.57%, 리시브 효율은 46.3%. 블로킹 득점 11-5로 현대캐피탈의 압도적 우위, 서브 득점도 3-2로 현대캐피탈 우위. 오기노가 강조하는 범실없는 내실있는 배구도 그리 보이지 않았다. 팀 범실이 17개로 현대캐피탈(20개)보다 단 3개 적을 뿐이었다. 이길래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배구의 전형이었다.
이날 현대캐피탈의 레오는 15점, 공격 성공률 42.42%로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레오는 존재만으로 상대 블로킹의 분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다. 명실상부 토종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허수봉이 양팀 통틀어 최다인 17점에 공격성공률 68.18%로 OK저축은행 코트를 맹폭했고, 최민호도 블로킹 4개 포함 11점(공격 성공률 77.78%)을 올리며 코트 가운데를 접수했다.
물론 이제 시즌을 2경기 치렀을 뿐이다. 그 상대가 ‘양강’으로 꼽히는 대한항공(1-3 패), 현대캐피탈(0-3 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해 보인다. ‘오기노 매직’의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시즌 챔프전 준우승은 오기노의 배구철학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레오라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