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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빛 총성 울린 ‘사격 황제’, 여의도에선 탄핵 오발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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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사격 국가대표 출신 진종오 의원사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하지만 실제 14일 표결에서 진 의원은 소신과 다르게 찬성표를 던졌는지, 반대표를 던졌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뉴시스

‘사격 황제’ 출신의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 진출한 뒤 총구를 체육계로 겨눴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안세영이 한국 체육의 낡은 관행을 직격한 작심 발언에 ‘체육계 비리 국민제보센터’를 개설했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체육계 비위의 중심에 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저격수로도 나섰다. 이 회장의 3선 도전이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승인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체육인 출신 의원으로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한 날”이라며 “범죄자를 두둔하고 감싸는 집단은 범죄 집단”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명중시킨 진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으로 체육계 개혁에 힘을 싣던 중 12·3 불법계엄 사태를 맞닥뜨리면서 정치인으로서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 "범죄자를 두둔하고 감싸는 집단은 범죄 집단"이라고 일갈했던 그는 정작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 당시 당론이라는 이유로 표결에 불참한 채 소속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의장을 떠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진 의원은 14일 2차 표결을 앞두고 SNS에 “국민의 응원을 받은 여당의 청년 대표로서, 저는 국민에 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실제 표결 때 진 의원이 기존 입장과 달리 ‘반대표를 던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는 즉각 “명백한 허위”라며 반발했지만 소신대로, 조준한 대로 진짜 찬성표를 던졌는지 여부는 끝내 밝히지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사격 영웅에서 정치계와 인연을 맺고 여의도에 뛰어든 체육인 진 의원의 발자취를 ‘이달의 스포츠 핫피플’에서 훑었다.

장난감 총 좋아하던 소년, 시련 딛고 국대 총잡이로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진종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태생부터 ‘총잡이’였다. 어렸을 때 장난감 총을 좋아하고, 총 모형 조립을 즐기던 진종오는 이 모습을 유심히 봤던 아버지의 지인이 권유해 강원사대부고 재학 중이던 17세 때 처음 진짜 총을 잡았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몰입력이 남달랐던 그에게 사격은 딱 맞았다. 총을 과녁에 맞히는 매력에 빠져 엘리트 선수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뒤따랐다. 고교 때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 왼쪽 쇄골을 다쳤고, 대학 땐 축구를 하다 오른쪽 어깨가 부러져 철심을 박았다. 이때 박은 철심으로 인해 공항 보안 검색에 꼭 걸려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워낙 큰 수술을 받아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었고, 한때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1년가량 이 악물고 재활을 버틴 그는 다시 일어섰다. 2002년 경찰체육단에 입단했을 땐 실력이 크게 늘어 처음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진종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쿼터를 따내 첫 올림픽 출전을 바라보는 듯했으나 정작 대표 선발전에서 1년 선배 이상도에게 밀려 탈락했다. 깊은 좌절에 빠졌지만 다행히 여자 권총이 초과로 획득한 쿼터가 남자 쪽으로 돌아오면서 진종오는 아테네행 비행기에 올랐다.

냉온탕 오간 아테네, 베이징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진종오의 금메달 소식을 전한 본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진종오는 첫 올림픽에서 대형 사고를 낼 뻔했지만 막판에 치명적인 실수로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사격 남자 50m 권총 본선을 1위로 통과한 뒤 결선 6번째발까지 선두를 지켰지만 마지막 7번째발에서 10.9점 만점에 6.9점을 쏴 러시아의 미하일 네스트루에프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도 충분히 값진 결과물이지만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4년 뒤를 기약한 진종오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침내 ‘금빛 총성’을 울렸다. 이번에도 똑같이 마지막 한 발을 쏠 때 실수했는데, 행운이 따랐다. 50m 권총 결선에서 마지막 사격을 앞둔 진종오는 652.2점으로 1위, 중국의 탄종량은 650.3점으로 진종오가 9.1점만 쏴도 금메달을 확정할 수 있었다. 결선에서 평균 9.9점을 쏴 금메달이 유력했지만 마지막 발은 8.2점이 찍혔다. 4년 전 악몽이 되풀이되나 싶었으나 탄종량이 9.2점을 쏴 1위를 그대로 지켰다. 아테네의 한이 베이징의 환호로 바뀐 순간이다.

아테네 대회 실수 이후 4년 동안 약 14만 발을 과녁에 쏟아붓는 진종오의 투지로 한국 사격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여갑순(여자 공기소총), 이은철(남자소구경소총 복사)에 이어 16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 쾌거를 이뤘다. 아울러 권총 종목에선 최초의 금메달이었다.

런던에서 쏘아 올린 인생 최고의 한 발

진종오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 런던 올림픽은 진종오가 2관왕에 오른 대회다. 베이징 대회 당시 은메달을 수확했던 10m 공기권총에서 런던 대회 첫 금메달을 쐈다. 결선 초반 5번째발까지 10점대 이상을 찍어 압도적인 1위를 달리던 진종오는 6~9번째발에서 9점대를 쏴 2위에 1.3점 차까지 쫓겼다. 또 마지막 한 발에서 순위가 뒤집어질 수 있어 지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지만 침착하게 만점에 가까운 10.8점을 찍어 1위를 확정했다. 진종오는 은퇴 후 이 마지막 발을 ‘인생 최고의 한 발’로 꼽았다. 그는 “마지막 발을 쏘기 직전에 ‘아테네와 베이징 때와 같은 아쉬움을 남기기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임한 주종목 50m 권총에선 8명 중 5위로 결선에 올라 대표팀 동료 최영래를 막판에 제치고 2관왕을 완성했다.

진종오의 올림픽 3연패 소식을 전한 본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새 역사를 완성했다. 런던에 이어 또 한 번 50m 권총에서 역전 우승을 일궈내 세계 사격 사상 첫 올림픽 단일 종목 3연패, 한국 선수 최초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선 중반 한때 1위 베트남의 호앙 쑤앙빈에게 큰 점수 차로 뒤졌지만 이후 10점대를 쏘며 추격에 나섰고, 마지막 두 발 남긴 상황에서 역전했다. 그리고 마지막 발을 9.3점에 적중시키면서 8.2점에 그친 상대를 따돌렸다. 올림픽 3연패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탓에 진종오는 “가장 무겁고 값진 메달”이라며 “사격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됐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게 '진종오답게 남을 위해 보여주는 사격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사격을 하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도쿄 올림픽 노 메달 후 “나이 못 속여”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 메달에 그친 진종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진종오는 마흔을 넘기는 2020 도쿄 대회까지 바라봤다. 그는 리우 대회를 마친 뒤 “후배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직 은퇴할 마음이 없다. 은퇴는 좋아하는 것을 그만하라는 것과 같다. 나에게 가혹한 이야기”라면서 4연패를 정조준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격 황제라도 흐르는 세월을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로 1년 미뤄져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에선 결선 무대조차 오르지 못했다. 메달 없이 올림픽을 끝낸 건 처음이다. 주종목 50m 권총이 도쿄 대회 때 사라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진종오는 “부족함을 채우려고 야간 훈련까지 하며 준비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도쿄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서울시청 소속으로 사대에 올랐던 진종오의 마지막 실전은 지난해 9월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다. 당시 본선 21위로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후 은퇴 의사를 굳힌 그는 올해 3월 공식 은퇴식을 통해 사격 선수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진종오는 “도쿄 올림픽을 치르면서 사실상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예상했다”며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대회라고 공개하면 스스로 부담을 줄 것 같아서 말을 못 했다”고 고백했다. 다시 태어나도 사격 선수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사격을 사랑한다”면서 “당연히 처음부터 사격을 열심히 시작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대 떠난 그 후 행정가로, 정치인으로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은퇴를 마음속에 품었던 그는 행정가로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레전드 이상화와 함께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우리 미래 세대가 체력적으로 약해져 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며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새 출발을 알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도 두 차례 도전장을 던졌으나 고배를 마셨던 진종오는 여의도의 러브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를 지지했던 그는 올해 2월 국민의힘 총선 인재로 발탁됐다. 인재영입식에서 “지난 20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만큼 이제 제가 돌려드려야 할 시간이다. 스포츠를 활성화시켜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정계 입성 포부를 밝혔다.

이후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4번으로 초선 배지를 달았고,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당시 한동훈 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치인으로도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던 그는 불법계엄 사태로 인한 불안한 정국에서 소신에 따른 행동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탄핵소추안이 14일 가결된 직후 국민의힘 최고위원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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